세 가지 이야기 :
애니미스트 선생과 네 명의 악동, 그리고 여덟번째 부인

오희정 (아르떼 웹진 경기통신원) / 아르떼 웹진 / 2009-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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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철성. Visual Theater Company 꽃 대표이다. 1996년에 등단한 시인이다. 전쟁의 땅 이스라엘에서 오브제극을 공부했다. 현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일도 한다. 나는 몸으로 하는 일이 좋다. 나는 예술가. 오브제극의 전문가다. 그리고 오브제극 교육에 사명을 가진 사람이다. 몸을 사랑하는 일이 감성을 치유하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물체들은 나와 통한다. 나는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press3 네 명의 악동- 미미미미, 분홍바지, 태권소년, 배불뚝이

여기는 평촌아트홀. 지하 공연 연습실. 우리 네 사람은 물체 오브극 체험을 위해 매주 한번 이곳에 오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우리는 매일매일 신나는 놀이를 합니다. 오늘은 맨 처음 시작으로 서로의 조각이 되어주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조각은 말을 하거나 움직이면 안됩니다. 만들어주는 모양대로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조각은 박수를 치거나, 불을 껐다가 켜면 그때에만 조각이 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조각이 되어보기도, 또 조각을 열심히 관찰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조각놀이가 끝난 다음에는 선생님이 주시는 두꺼운 종이를 한 장씩 받았습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것이 무엇일까요?’하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계속 ‘종이요! 종이~’라고 말했는데, 선생님은 이것을 화성에 놀러갔다가 가져온 물건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가져오는 도중에 그만 동해바다에 빠트려서 이것의 약간 한 쪽이 젖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거짓말 같아서 ’진짜예요?‘ 하고 물었는데 선생님이 계속 웃기만 하셔서 진짜인지 아닌지 헷갈렸습니다. 우리는 이 물건을 잘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딱딱했는데 물에 젖은 부분은 구부러졌습니다. 이것을 휙! 놓으면 탁! 소리가 나기도 하고, 살짝 놓으면 소리가 안 나기도 했습니다, 막 흔들면 또 다른 소리도 나고, 바람도 생겼습니다. 특히 바람을 세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물건으로 한 사람은 바람을 만들고, 한 사람은 휴지가 되어서 바람에 따라 훨훨 날려 다녀보기로 하였습니다. 바람을 만들어주는 것도 신났고, 바람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계속 바람놀이를 하고 노니까 팔이 아파 힘들기도 했습니다.

다음은 이 물건으로 무인도에서 바다로 건너가는 놀이를 하였습니다. 이 물건 밖으로 나가면 선생님이 악어가 되어서 우리를 잡아먹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정말 배불뚝이와 미미미미가 바다로 나갔더니 선생님이 쩝쩝쩝 배불뚝이와 미미미미 엉덩이를 먹었습니다. 징검다리를 만들고 한 사람씩 건너갔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하나씩 징검다리를 없애버렸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깜짝 놀라서 혼자만 육지로 도망갔는데 나중에는 서로서로 힘을 합쳐서 바다를 건넜습니다. 서로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 재미있어서 여러 번 징검다리 놀이를 하면서 놀았습니다. 선생님은 악어가 되서 소리 지르는 미미미미를 겁주고, 먼저 살겠다고 도망가는 배불뚝이를 혼내고, 날렵한 태권소년을 칭찬하기도 하고, 무서워서 떨고 있는 분홍바지를 응원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다보니까 땀도 나도 목도 말랐는데 그래도 아주 재미있었습니다.

여덟 번째 부인

우리 주변에 흔히 볼 수 있는 돌, 주걱, 고구마, 가죽구두, 양복 윗도리가 어느 날 아침 일어나보니 말을 건다면?

오브제극은, 모든 물체에는 ‘정령’이 존재한다는 가제에서 우리의 상상력을 발동하게 해. 그동안 일상의 풍경으로 존재하던 오브제들에게 우리가 생명을 부여함으로써 살아 움직이게 하는 거야. 인형극, 가면극, 그림자극도 넓은 의미의 오브제극에 속한다고들 하지. 이번에 경험한 활동은 생명이 없던 오브제들을 우리의 주변의 친구들로 뒤바꾸는 마술적이고 환상적인 놀이라고 할 수 있었어. 난 말이야. 좀 비약하자면, 단순히 새로운 요소를 가미한 연극 교육프로그램이겠다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이번 활동을 접하게 되었어. 초등학생들에게 오브제의 의미를 어떻게 인지시키느냐하는 것도 의문이었고 말야. 그런데 직접 프로그램 과정을 함께 하면서 그리고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서 오브제극이 가지는 사실- 사람이 아닌 물체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말을 걸고, 새롭게 탐색해 나가는 과정-에 대한 놀라움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지. 아이들은 금방 이번 활동에 익숙해진 듯 했어. 8살, 10살의 어린 나이임에도 자신의 역할에 대한,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이해가 점점 트여가고 있는 듯 했지. 나도 심리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살피던 나의 직업적(?)인 태도에서 벗어나서, 생각을 확장하고 아이들을 하나하나 다시 보기로 했어. 아이들은 모두 경쾌하고 역동적이었어. 개개인 하나하나의 개성이 톡톡 튈 수 있는 구조 안에서, 그 속에서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숨을 쉬고 있더라구. 처음엔 달랑 한 명의 선생님과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네 명이 수업한다는 것이 무척 어색해 보였어. 기관에서도 이 강좌에 20명의 아이들을 정원으로 하고 있었구 말이야. 그런데 막상 수업을 보다보니 생각이 달라졌어. 이렇게 운동량이 많은 활동을 열 명이 넘는 아이들과 과연 함께 할 수 있을까. 물론 보조 강사와 함께 진행되겠지만 중심 과제를 수행하게 되는 저학년 아이들 모두에게 정작 메인 강사는 하나하나 집중하긴 힘이 들겠지. 그러면서 선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가슴에 콱~ 와 닿았어. ‘같은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은 인원에게 경험하게 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수의 교육 대상이라도 제대로 된 양질의 프로그램을 어떻게 느끼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라는 것 말야. 바로 교육을 교육대상에게 중심을 두어야 한다는 가장 근본적인 원리. 그걸 다시 깨우쳐 주셨어. 이런 맥락을 생각해 볼 때 선생님께서 친히 전국을 돌며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참, 이 프로그램은 2005 전국문예회관연합회 선정 우수예술교육 프로그램에 선정되었고, 현재 전국 단위로 연합회의 지원을 받으며 진행되고 있어. 그래서 경기도 고양에서부터 전라도 완주까지 전국을 일주하셨다고 하네. 물론 돌아다니는 것도 즐겁다고 하시면서 말야. 기회가 된다면 전국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프로그램으로 여러 대상을 만나는 것이 좋으시다나 봐. 역시 활동가는 활동가스러워. 선생님을 뵙고 돌아오는 중간에도, 그리고 지금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계속 편두통에 머리가 지끈거려. 왜 그럴까? 생각해봤더니 그동안 내가 너무 내 머리만을 믿고 머리를 굴리는 버릇이 생겨서 그런 것 같더라. 좀 더 내 주변의 -일상의- 물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의 짐을 함께 나눠야 하겠구나. 그러라구 아마도 내 몸이 나를 토닥이나보다 생각이 들었어. 오브제 교육극. 정말 앞으로 기대되는 프로그램인 것 같아. 통찰이라는 자기 믿음을 더욱 굳건히 해 줄 귀한 선물. 그래서 모두에게 나눠주고 싶은 선물이 되었네.

피에스 여덟번째 부인이 무슨 뜻이냐구?

글쎄 말야, 난 한창 활동 재미나게 보고 있는데 분홍바지가 막판에 그러더라구. 궁금했었나봐. 이철성 선생님한테 이렇게 말했어. “선생님! 왜 오실 때마다 여자 선생님이 바뀌어요? 선생님은 부인이 여덟명이죠?” 아이구, 여…덞….번째 부인? 선생님 바로 바닥에 쓰러지시고, 난 벽을 바라보고 절망에 몸부림쳤어. 요녀석들! 여튼 내가 여덟번째였나봐. 그래도 굴하지 않고 네 놈 모두 능글능글하게 웃고 있더군.